mémoire
학부 졸업을 위한 마지막 관문중의 하나인 소논문(mémoire)의 주제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를 벌써 여러 달. 정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생각의 가지들 사이를 헤맸던 기간이 아닌가 싶다. 필사적으로 헤매다 보니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들어서는, 조금 더 했다간 거의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기원에까지 다다랐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알 필요도 없는 스타차일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을 지도. 조만간 그간의 고민을 다 잊어버리게 되겠지만, 어쩐지 지금은 머리 속이 약간 분명해 진 것만 같아 마음이 퍽 가볍다. 그러고 보면 이런 루틴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작된 듯 하다. 지금도 유치원에서의 미술 시간은 끔찍한 악몽처럼 느껴진다. 가령 이런 식이었는데, 아주 한참동안 뭘 그릴까 생각하다가 겨우 뭔가에 생각이 미치면, 그걸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또 고민이 되고, 제대로 그리자면 어려울 것 같으니 더 쉬운 걸 찾아보자고 또 뭘 그릴까 생각하다가, 결국 찾아낸 것을 그리려고 하면 역시 어려울 것만 같고... 그러다 보면 미술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고, 도화지를 조금 깨작깨작대다가 금새 끝이 나버리곤 했다. 간신히 논문의 큰 주제를 생각해 내서는 교수님 방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갑자기 그 순간이 너무 두려워져서는 한 30분간을 그 앞에서 괜히 서성대기만 했다. 첫사랑이라고 불러야 할 한 여자아이에게 처음으로 레코드판을 선물하기 위해 서너시간을 서성거렸던 것이 벌써 17년인가 되는데, 결국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하고 나오자 마자 그 오래된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꽤 의미심장하다. 태어나서 한 여자아이에게 레코드판을 주기까지 약 17년, 그 후로 다른 나라까지 와서 교수님에게 뮤지컬 영화에 대해 논문을 써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기까지 약 17년. 어떤 면에서 지난 17년은 너무 천천히 지내 왔고, 큰 일들은 최근에야 다 일어난 듯한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