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08의 게시물 표시

mémoire

학부 졸업을 위한 마지막 관문중의 하나인 소논문(mémoire)의 주제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를 벌써 여러 달. 정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생각의 가지들 사이를 헤맸던 기간이 아닌가 싶다. 필사적으로 헤매다 보니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들어서는, 조금 더 했다간 거의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기원에까지 다다랐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알 필요도 없는 스타차일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을 지도. 조만간 그간의 고민을 다 잊어버리게 되겠지만, 어쩐지 지금은 머리 속이 약간 분명해 진 것만 같아 마음이 퍽 가볍다. 그러고 보면 이런 루틴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작된 듯 하다. 지금도 유치원에서의 미술 시간은 끔찍한 악몽처럼 느껴진다. 가령 이런 식이었는데, 아주 한참동안 뭘 그릴까 생각하다가 겨우 뭔가에 생각이 미치면, 그걸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또 고민이 되고, 제대로 그리자면 어려울 것 같으니 더 쉬운 걸 찾아보자고 또 뭘 그릴까 생각하다가, 결국 찾아낸 것을 그리려고 하면 역시 어려울 것만 같고... 그러다 보면 미술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고, 도화지를 조금 깨작깨작대다가 금새 끝이 나버리곤 했다. 간신히 논문의 큰 주제를 생각해 내서는 교수님 방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갑자기 그 순간이 너무 두려워져서는 한 30분간을 그 앞에서 괜히 서성대기만 했다. 첫사랑이라고 불러야 할 한 여자아이에게 처음으로 레코드판을 선물하기 위해 서너시간을 서성거렸던 것이 벌써 17년인가 되는데, 결국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하고 나오자 마자 그 오래된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꽤 의미심장하다. 태어나서 한 여자아이에게 레코드판을 주기까지 약 17년, 그 후로 다른 나라까지 와서 교수님에게 뮤지컬 영화에 대해 논문을 써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기까지 약 17년. 어떤 면에서 지난 17년은 너무 천천히 지내 왔고, 큰 일들은 최근에야 다 일어난 듯한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