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델타 보이즈 (2016)

매형의 공장에 일하는 일록에게, 어느 날 미국에 살던 친구 예건이 찾아온다. 남성 사중창 경연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대용과 그의 후배 준세와 함께 델타 보이즈라는 중창단을 결성하여 연습한다.  이 한심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앞뒤 재지 않고 꿈을 좇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 냉정히 생각하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정이 들어서인지 바보같이 티격대는 모습을 보아도 밉지 않다. 전혀 무해할 것 없는 - 이에 대해 지혜의 생각은 좀 다를 것이나 - 그들에게 몇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게 된다.  그래서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예건과 일록이 라면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가 이 영화의 정수가 아닐까 생각 해본다. 그것도 이야기의 전개와 크게 상관없는 부분들. 유년기부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게도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시끄럽게 이를 쑤시는 행동. 이에 대한 친구의 '개병신'이라는 받아침. 어색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멈추지 않는데, 어쩐지 영화도 나도 함께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는가 하면, 이 남자들은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그냥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생각 때문에 끊임없이 가슴 졸여야 했다. 그들이 과연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네 사내가 성공적인 중창 공연 무대를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아닌, 말 그대로 - 들어줄 만하게 -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예건에게 정말로 중창단을 리드할 능력이 있을까 영화 후반까지 끊임없이 궁금했다. 그것이 해결되고 나자 곧바로 나머지 세 사람에 대한 염려로 이어졌고. 궁금증을 해결하기까지 아주 오래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이 더욱 각별한 듯하다. 궁금증, 기대...

남매의 여름밤 (2019)

여름 방학, 옥주는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 머문다. 남편과의 불화를 겪는 고모까지 합세하여 다섯 식구가 함께 여름을 보낸다.  여름밤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설렘의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어디서든   얼마   동안이든   헤매다녀도   끄떡없을   포근한   날씨,   후덥지근함   속에   가끔씩   바람에   실려오던   서늘함,   마음에   담아둔   누군가를   생각하며   막막하기도   설레기도   했던   기억들,   집을   떠나   시골에서   바닷가에서   느꼈던   낯선   마음... 할아버지의 오래된 집에 들어오는 순간의 옥주가 품었을 마음은 어땠을까? 예상과 달리 그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무뚝뚝한 할아버지 곁에서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나중에야 생각이 미쳤다. 아직 몸도 마음도 다 자라지 않은 이 아이의 마음 속엔 대체 어떤 폭풍이 지나고 있었을까 하고. 좋아하는 남자 아이와의 관계, 엄마의 부재, 갑작스런 이사, 할아버지를 둘러싼 어른들의 - 이해하기 힘든 - 생각... 뒤늦게...

자막을 싫어하는 이유

 모든 자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 관한 이야기다. 첫째, 참견처럼 느껴진다. 종종 웃음의 포인트를 일러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촬영, 편집을 거쳐 만들어진 영상 속에는 이미 완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 혹은 담겨 있어야 한다 -. 그렇게 구축된 세계 속에서 나는 길을 잃을 수도 있고, - 제작자의 의도에 비추어 -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고 다른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감상 방향과 다른 메시지를 자막에서 읽는 순간, 왜 나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가 항의하고 싶어지곤 한다. 둘째, 중언부언처럼 느껴진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동일한 메시지를 자막에서 읽는 경우, 왜 영상에서 보여지는 것을 다시 말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약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는 것이, 감상자의 이해력 부족을 염려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경우지만,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편집 방식이 불만스러운 것과 유사하다.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편집을 통해 서너 차례 반복해 보여주는 것. 음악을 완벽하게 망가뜨리는 방식이며, 가수와 음악이 함께 이른 정점의 순간을 되려 우스꽝스러운 순간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자막을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 부수적 요소로 보는 편협함에서 기인한 불평인 것 같기도 하다.

밀레니엄 맘보 (2001)

2001 년 , 타이페이 . 비키는 애인 하오하오와 함께 산다 . 하오하오는 약물 중독과 비키를 지독히 의심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 비키는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 더 나이가 많고 위험한 일을 하는 잭 , 그러나 비키를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펴 준다 . 일본으로 피신한 그를 만나러 가지만 결국 비키는 그를 보지 못한다 . 황홀한 첫장면 . 형광등으로 밝힌 , 양옆이 뚫린 마치 터널같은 - 그러나 지상의 - 보행로 . 몽환적인 음악이 흐르고 , 길 머리를 휘날리는 비키의 걸음은 힘차다 .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 그리고 그를 따르는 카메라 혹은 누군가를 자꾸 돌아본다 . 그의 나레이션 . 그가 계단을 힘차게 내려가며 시퀸스가 끝난다 .   영화는 2001 년에 세상에 나오고 , 2001 년의 비키를 보여준다 . 그러나 나레이션 속에서 비키는 , 10 년 전의 일이라고 못박는다 . 그 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천년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기대와 흥분에 젖곤 했다 . 단지 마음의 문제였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마음은 , 기대는 , 언제나 무언가를 찾아내어 새로운 계기로 삼을 준비를 늘 하고 있다 . 젊은이와 노인의 자세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테지만 . 그러니까 새 밀레니엄이라는 흥분 속에는 사실 , 현재의 삶에 대한 기쁨과 슬픔이 기초가 되어 그것이 계속되거나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도사리고 있었던 듯하다 . 너무 진부하고 잔인한 얘기가 되겠지만 , 그로부터 세월이 - 10 년 쯤 - 흐르고 나면 차가워진 마음으로 되돌아와 말할 수 있게 된다 . 결국 시간이란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으며 , 단지 숫자의 문제였을 뿐이지 그 해도 다른 해와 다를 것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