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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한 순간

사람좋아보이지만 실은 무척 고통스럽게 강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Robin 선생님. 인연이 좀 있었는지 학부때 한번, 그리고 이번 학기에 또 수업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두번 모두 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강의 마지막 시간에 일일이 한명씩 면담을 하며 시험 답안지를 나눠주는 까닭에 그 기다림이 꽤 지루하면서도 스릴있긴 하지만, 그 꼼꼼함 내지는 친절함이 되려 불편했을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점 만점에 어쩔 수 없이 준 것 같은 10점짜리 시험지를 받아들고 그와 마주앉아서 '주로' 문제점들에 대해서 한 10분간 떠들어댄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불상사는 없었지만, 선생님으로부터 '일종'의 칭찬을 듣고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명색이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내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상대방이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한다고 해도 그에 수긍한다는 듯 아무말않고 있는 것은 사실 그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지극히 당연한 말에는 그에 걸맞게 아주 강한 어조로 동의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말을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표현으로 한번 더 반복해 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며 처음의 말을 다시 반복해주는 센스는 기본중의 기본이다. 조금 더 여력이 된다면 대화의 내용과 별 상관이 없더라도 저명한 인사의 말을 인용해 줌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그의 생각에 티끌만큼도 의심을 품고 있지 않다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고. 문제는 이미 그 효과가 증명된 대화 패턴을 무시하고 마치 혁신적인 논문을 쓰듯 상대방의 주제에서 슬그머니 한발을 내디딜때 발생한다. 물론 이것도 "네 그렇습니다" "뭘 그런 말씀을 다" "부족한점이 많은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따위의 관용적인 표현들을 반복하기가 지겹기도 하거니와 - 게다가 조금 긴 관용표현들을 내가 외우고 있을 턱이 없잖은가 - 슬쩍 우쭐한 나머지 자신의 샤프함을 조금 더 드러내보자고 만용을 부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