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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두여자'에서 '두여자와 고양이'로, 그리고 '여행자'로. 브뤼셀에서 달려와준 미선은 두여자와 고양이 시절에 목소리와 모습을 빌려주었고, 아마도 여행자로 변신하여 그 속에 자리잡을 예정이다. 가정불화(부부싸움)로 인해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계획을 접을 뻔 했으나, 막판 화해로 전체 일정중 0.6667일 딜레이 정도로 무마됨. 화목한 가정이 뭐니뭐니해도 중요한 것임을 새삼 깨닫다.

벼락치기

할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뭉개는 것은 아주 오래된 나쁜 버릇이다. 국민학교 시절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온가족이 밤늦게까지 내 밀린 방학숙제를 하느라 낑낑대던 것이 생각난다. 중학교때 쯤엔 이미 슬슬 숙제를 생략하기 시작했던 것 같고, 대학생활 5년간은 정말 나 스스로도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기한을 어기거나 아예 포기하기를 끊임없이 일삼았다. 대학 5학년 졸업논문 준비로, 회사원으로, 카드빚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번역까지 하던 시절은 가히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들고 학교 컴퓨터실로 퇴근하기를 수차례... 교수님의 책망과 공동번역자 H형의 협박, 회사 상사의 떨떠름한 눈초리까지. 어쨌거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르기까지 했다. 벼랑끝까지 몰리는 것, 참 갑갑하긴 한데 나름 쾌감도 있다. 자꾸만 뻔뻔함과 변태적 취향이 발달하는 것 같아 내심 걱정도 된다.

기시감?

얼마전 어느 날씨 화창한 주말, 곧 공연이 시작되는 극장 입구 앞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데 어떤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1924년 생이신 임xx선생이란 분이 계시는데, 파리에 바둑 클럽도 만드시고 말하자면 바둑의 개척자같은 분으로 여겨진단다. 그 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원한다면 자신이 중재자 역할을 해 주겠단다. 얼핏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외모와 말투의 이태리 노인의 이야기를 고분고분 들으면서, 어딘가에서 들었던 혹은 보았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분명히 하자면, 이 노인과의 만남에 대한 것 말고, 낯선 땅에서 바둑의 고수로 알려지신 그 분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내 머리속에 있었던 것만 같다. 언젠가 꾸었던 것만 같은 꿈 이야기, 실제 존재했던 일이라는 듯 구체적인 정황들로 가득한 꿈에 대한 기억. 당시에야 의심의 여지가 없었겠으나 언젠가 꿈인지 왜곡된 기억인지 알쏭달쏭하게 될 운명의 이야기들. 그리고 중심 사건의 진위여부보다는 과연 꿈을 꾸었던 것인지 단순히 두뇌속 세포들의 실수로 인한 것인지 등의 그 과정에 대하여 더 몰두하게 되는 한가하기 그지없는 태도. 기타등등 기타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