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07의 게시물 표시

잦은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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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중이니 한없이 한가하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노느라 바쁠 것이라 생각할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학기중보다 더 바쁜 듯 하다. 가령, 오늘 외출 횟수를 - 대문 안과 밖을 왕복한 횟수 - 세보니 총 6번. 동규 데리고 아침 산책 겸 놀이터 방문 동규 낮잠 재우러 산책나갔으나 실패 동규 낮잠 재우러 산책나갔으며 성공 송금한 돈이 들어왔는지 계좌 확인하러 우체국 다녀옴 동네에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나는 집이 있길래 구경 다녀옴 동규 데리고 오후 산책 그 때마다 이 창 앞을 지난다.

돌아온 짐가방

낮에 불쑥 걸려온 전화. 8월 2일 밤부터 우리가 그렇게 기다려 마지않던, 그러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마지막 짐가방을 배달하겠다는 용건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다. 큼직한 이민가방의 가운데 부분이 갈라져 두 개로 나뉘어 있었고, 짐가지들은 큼직한 비닐에 대충 담겨 있었다. 사소한 분실물이 있는 듯 하고, 때묻은 옷들이 약간, 벌꿀이 터져 좀 찐득찐득하고... 그러나 짐에 붙여놓았던 테그 따위는 여전히 무사하던데 대체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하느라 거의 20일이 다하여 올 수 있었던 것일까? 물론 늦게라도 돌아와줘 기쁘고 한편으로는 그간 입은 피해로 인해 약도 오른다. 자기 물건이 아니라고 해서 성의없게 짐을 다루는 관련자들이 무척 괘씸하다. 사람이란게 원래 이기적인 존재인거지 딱히 그 사람들만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겠어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질랑 말랑 하면서 또 많이 무겁기도 하고 그렇네.

사건 사고

샤를 드골 공항, 씩씩하게 내리고 보니 부친 짐 4개 중 하나도 나오지 않아 황당했다. 이틀 후 유모차 도착, 또 며칠 후 2개의 짐보따리 도착.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오리무중. 마음을 비우는 법을 숙련시킬 또 하나의 찬스. 도착한 날부터 어째 이상하던 세면대 수도꼭지. 줄줄 새다 못해 결국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수도 밸브를 잠갔다 열었다 불편함이 대단한데, 어제 (휴가에서) 돌아온 옆집 주인녀석은 어디론지 증발했다. 내일은 꼭 만나봤으면 싶다. 부엌과 거실 천정의 실내등이 모두 켜지지 않는다. 뭐하나 안돌아가는 것 하나 없는 그런 곳에 살고 싶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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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시간날 때마다 들른다거나, 들르기 전 열심히 공부를 해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게을러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런 저런 상황들이 어째 마냥 느긋하게 만드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가끔 설레일 때가 있다. 어렸을 적엔 한적한 박물관이 주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다지 사람도 많지 않고 찾아보면 어두운 구석이 여기저기 보이는 그런 곳에서. 전시물들은 어쩐지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보이고, 그것들이 어떤 계기가 된다면 다시 살아움직일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곳을 언젠가 여자친구와 함께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꼭 전시물 뿐 아니라 박물관의 이름, 장소, 그 주변의 환경, 건물의 색과 모양, 질감, 분위기 모두가 다 발견의 대상이다. 발견의 기쁨은 기대하지 않았을 때, 불쑥 다가왔을 때 더욱 반가운 법이다. 남들은 이런 것들을 보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났을 때 종종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래의 사진은 용산의 국립 중앙 박물관. 실은, 이전한 줄도 모르고 광화문에 갔다가 다시 용산으로 가야만 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찬찬히 둘러볼 여유도 없었는데, 아직 공간이 넉넉한 새집같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Paris plage, 자전거, 무지개...

지난 일요일, 성당에 갔다가 집에 그냥 돌아오기 뭐해 빠리 쁠라지 구경을 가기로 했다. 그간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었는데 모처럼 햇볕도 즐기고 여유도 부릴 수 있어 퍽 반가왔다. 내친 김에, 얼마전부터 시에서 야심차게 추진중인 자전거 대여 시스템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잠시 아기와 엄마를 강변에 남겨두고 시청까지 걸어가 자전거를 빌렸는데, 처음 페달을 돌려보는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온 몸에 긴장이, 쉴새없이 흐르는 땀에... 자전거 타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필요만 절실히 느꼈다. 집에 오니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고 세찬 비까지 한차례 지나가더니만 예쁜 무지개가 둘 씩이나 하늘에 나타났다. 사진도 찍고 아기에게 무지개가 뭔지 열심히 설명도 해주고 함께 크레용으로 그림도 그리고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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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이촌동을 떠날 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먼 곳으로 모험이라도 떠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다음 자리잡은 홍제동.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내가 걷는 길은 전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내가 그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때문인지 나의 행동조차 전과는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간 삼전동 시절을 지내고, 프랑스로. 이제 여름이 되어 귀국할 때면 일산에서 지내게 된다. 전에 가끔 느꼈던 비현실적인 감각은 아주 확고한 것이 되어 그렇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지경이 되고 만다. 지금보다 어릴 적, 지방사는 동기들이 방학이면 고향에서 얼마간 지내다 오는 것 마냥 나도 그런 생활을 하게 된지 몇 해가 지났다. 국 내외적으로, 그 각각에서 여기 저기로 옮겨다니면서 깨닫게 되는데, 어디에 있건 나름 좋은 구석이 있어서 결국 정이 들고, 어쨌든 그 동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결국 여기 저기 다니며 겪게 되는 가장 큰 변화란 것은 지금까지의 식구가 앞으로도 식구일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닐까 한다. 함께 살다가 헤어진다는 것은 참 아쉽다.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해 보니 헤어진다는 것이 전보다 더욱 아쉽다. 그래서인지 작년과 달리 이번 헤어짐에서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게 막내아들 때문이 아니라 귀염둥이 손자때문이라는 것이 묘한 비현실감을 주었다. 그리고, 대체 언제쯤 나는 내 위치를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자문해 보았다. 옮겨다니는 것이 지겨워진 지 벌써 꽤 되지만 언젠가 꼭 살아보고 싶은 곳이 아직도 국내에 두 곳 정도는 더 남아있다.

귀환

그간 편안히 지내던 집을 떠나 다시 프랑스로 향하는 길. 괜히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거리는 듯 했다.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도 어렵고, 가족들을 등뒤에 두고 마음속으로 '자!' 하고 외칠 때의 그 막막함. 그마나 생활속의 어쩔 수 없는 분주함이라도 없었다면 이런 것들을 다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또 하루, 일년을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셈이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해 황당했던건, 우리 짐들이 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 조서를 작성하고 기다려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수 밖에. 대신 좋은 일도 있었다. 9월부터 아람이를 받아주겠노라는 연락을 탁아소 crèche 에서 해왔기 때문이다. 걱정 반 기대 반. 좋은 일이라고 믿고 기다리면 모든게 좋아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인사 말씀 한마디. 한국에 있는 동안 이래저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불편함도 감수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굳이 H형, E양, C군, L형, M형, 등등 이렇게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본인들은 다 아시겠지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즐거운 한해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