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5일 일요일

긴 하루

아침에 동규의 태권도 1품 심사를 위해 국기원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녀석의 컨디션이 무척 안좋았던 터라 무척 걱정했더랬다. 사실 컨디션이 나빴던 건 나도 마찬가지. 감기에 굴복하지 않고 열심히 심사를 마쳐서 무척 대견했는데, 동규 자신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통에 이래저래 뿌듯했다.

오후엔 이사짐을 조금 옮겨놓고, 공항으로 누나와 매형을 마중나갔다. 운전은 지긋지긋하다 싶었는데, 새집에 가서 집사람 부탁으로 장을 조금 보고 또 기진맥진.

부모님 댁에 와보니 동규가 축 늘어져서는 카스텔라만 먹고 싶다길래 다시 제과점에 가서 사오고. 돌아와보나 아이는 잠들어 있고, 나는 또 기진맥진하여 쉬고 있다.

우리집에서 같은 성씨를 가진 두 남자는 이렇게 탈진상태이고, 다행히 다른 성씨를 가진 여자 한사람이 잘 버텨주고 있다.

다양성의 확보란 이래저래 좋은 것인 듯.

2010년 6월 10일 목요일

파리 8대학의 주요 상영목록(?)

얼마전부터 프랑스 관광청 블로그에 글을 좀 올리고 있다. 마감에 맞추느라 좀 급히 마무리해서 두서없는 글이 되긴 했는데 나름 고생해서 한 일이니 여기에도 옮겨 놓도록 한다. (우영씨, 미리 허락 안받았는데 괜찮겠지요? 혹 문제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파리 8대학의 주요 상영목록(?)

한 두해 전, 수업 중간 쉬는시간에 파리 8대학 영화과 강의실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영화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보면 재밌지 않겠는가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눈 적이 있다. 대학 영화과 진학 지망생들을 위해 소위 ‘8대학에서 자주 보는 영화들’라는 제목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고, 목록 맨 끝에 ‘이런 영화들을 견뎌낼 자신이 없으면 진학을 포기하시오’라는 경고를 덧붙인다는 장난섞인 계획이었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애초의 의도에서 심술궂은 의도는 대부분 거둬들이고 여기 그 목록을 공개한다. 필자가 수강한 과목들을 기초로 해서 작성했으나, 일부 과목들은 그 이후 폐지되었을 수도 있다.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노스페라투(1922)

영화의 역사에서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는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종종 계획되는 표현주의 영화 수업에서 이 영화들이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들에 대한 수업, 영화의 보존 및 복원에 관한 수업에서도 종종 다뤄진다. 대학에서의 공부 방법, 논문 작성 등의 기초 지식을 위한 강의가 해마다 한번씩 있었는데, 한 영화의 여러가지 버전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 역시 이 영화들이 언급되었던 기억이 난다. 관련 강의를 다 들었으므로 이제 끝이겠지 생각하면 오산. 8대학의 영화 연출 석사 과정에서는 자신이 연출할 작품에 대해 학생들과 교수 앞에서 끊임없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 작품들의 일부 요소를 참고한 영화를 만들려는 학생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

위의 영화들 외에 메트로폴리스(1927)도 단골로 등장하는 작품 중 하나.


- 히치콕의 영화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현기증’ ‘이창’ ‘싸이코’ 등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즐겁다. 어느 시대 이후로 히치콕은 ‘미장센’이라는 용어와 거의 동일시되는 인물로 간주되고 있으므로 그의 영화는 거의 모든 수업에서 사용 가능하다. 1,2학년때 주로 편성되는 개론 수업에서는 물론이며, 시나리오, 몽타쥬 수업 등 수없이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자주 보다보면 흥미를 잃을 수 있으므로, 가급적 개인적인 프로젝트의 참고 자료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나을 듯.

- 장 뤽 고다르

히치콕이 미국을 대표한다면 고다르는 프랑스를 대표한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뿐 아니라 동시대의 세계 각국의 혁신적 영화 운동을 다루는 수업의 한 교수님의 의견에 따르면, 그는 당시 영화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경멸’(1963). 브리짓 바르도, 작품에 직접 출연하는 고다르의 모습, 자막이 아니라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영화 크레딧, 관객과의 상호작용성, 비전형적인 편집, 씬과 씬 사이의 불일치, 영화속에 그려지는 감독 - 프리츠 랑이 직접 출연했음 - 과 프로듀서와의 관계,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등등 무궁무진한 강의 재료를 제공한다.

- 코엔 형제의 영화 중 ‘파고’(1996)

사실 그들의 영화가 그리 많이 언급되지는 않는데, 1학년 시나리오 수업 때 한학기 내내 이 작품만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영화 첫부분부터 보기 시작해서 매 강의마다 5분 내지 10분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을 보고 이야기하고 또 보고 이야기하고... 이렇게 한 학기를 보냈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이 말이 많다고 하는데, 영화과 교수들의 경우 때로 한 씬을 놓고 한 두시간을 뚝딱 입으로 떼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문화적 차이인 것인지 전세계 영화 애호가들의 인반적인 특성인지는 아직도 분명하게 결론내리지 못하고 있다.

- 타르코프스키

흔히 영상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타르코프스키. 실제로 그의 에세이를 읽어 보면, 그가 훌륭한 영화 이론가이자 문학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허나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단지 ‘시적’이라는 표현은 별다른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럼 그의 작품이 과연 시적이기만 할 뿐일까? 수업에서 가장 쉽게 마주치는 그의 작품은 ‘스토커’(1979), 특히 인물들이 금지된 장소로 여행하는 장면에서의 소음, 대사, 음악의 미장센의 치밀함이 종종 언급된다. 학부에 배정된 그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는 몇몇 작품들 전체를 감상하고 미장센, 상징성 등 여러 주제에 대해 토의한다.

-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

말도 많은 20년대 영화사의 맥락에 놓아도 좋고, 미래파 운동과의 관계하에 있어서, 러시아 영화사의 중요한 한 대목으로, 예술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에 대해, 심지어 다큐멘터리의 한 기원으로까지 별의 별 화제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무한한 강의의 원천같은 영화. 특히 동시대의 비슷한 특성을 지닌 각국의 영화들 - 도시, 음악성 등을 다루는 - 및 다큐멘터리 - 소위 시네마 디렉트 - 를 강의하는 한 선생님의 수업에서 그의 영화를 때로는 복원된 음악과 함께, 때로는 완전한 정적 속에서 반복하여 본 기억이 난다. 어쩐지 그의 디비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까지 갖게 만든다.

- 백남준

한때 까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 중 하나였으며, 고인에 대한 존경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그의 비디오 작품들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분야에서 그의 선도적인 역할, 존 케이지 등 그가 교류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추억들을 옛날 이야기 듣듣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한국인 중 이렇게 큰 업적을 남긴 예술가가 있었구나 하며 뿌듯해하려는 순간, 폭넓은 활동과 인생 전체를 통해 한 나라의 국민이라기보다는 세계인이라 불러 더 적절할 듯한 그의 삶을 되새기며 해외 여행에 대한 의욕이 더욱 샘솟게 된다.

- 니콜라스 레이, 프리츠 랑

학기에 따라 한번은 레이, 한번은 랑에 대한 강의를 번갈아가며 하시는 한 노교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지는 못하나 그의 강의 방식은 다분히 씨네클럽같은 분위기이다. 매시간 강의할 인물의 특정 시기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있은 후, 그 시기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면 역시 간단한 정리로 끝난다. 같은 작품들을 반복해 보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작가의 영화를 학기 내내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강의의 주제는 해당 작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씨네필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상으로 다소 산만한 리스트가 대충 마련된 듯 한데, 학생에 따라 듣는 수업이 다르기 때문에 과 학생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두는 것이 좋겠다. 또한 강의 시간동안 한 작품 전체, 또는 일부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종종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게 됨에도 불구하고 언급할 근거가 분명히 있다는 것도. 다만 강의에 주어진 시간, 교수라는 한 인간이 연구에 쏟을 수 있는 지적 에너지의 한계, 일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의 쏠림 현상 등이 어떤 이에게는 다소 편향되어 보이는, 다른 이에게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 물론, 한 작품을 반복해서 보며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도 굉장히 멋진 일이긴 하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새로운 인생 - 오르한 파묵

최근 '내 이름은 빨강'을 우연히 읽었고, 이렇게 시작된 작가와의 첫 만남이 무척 강렬했기에 '새로운 인생'으로 이어갔다.


'내 이름은 빨강'이 능글맞고 용의주도하다면 '새로운 인생'은 작가의 감상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읽는 내내 토머스 핀천의 문장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느끼기엔 '새로운 인생'이 더욱 야심찬 작품이 아니었나 싶긴 한데, 솔직히 약간 실망스러웠다는 점도 말해두는 편이 좋겠다.

어쨌든 둘 모두 작가에 대해, 그리고 터키라는 한 나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더 알고 싶도록 만드는 작품들. 다른 작품들을 더 읽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칼비노와 이청준의 작품들을 거칠 생각이다.

2010년 5월 16일 일요일

두식구 한집살이

작년 여름, 한국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프랑스로 돌아올 때까지도 새로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고맙게도 영훈형이 도와줘서 위기를 넘겼다면, 이번에 어떻게 그 고마움을 갚을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오늘부터 며칠간을 두 식구가 우리집에서 한집살이를 하게 된다. 지난 여름에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결 여유롭게, 어쩌면 조금은 즐기듯이 상황을 맞이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하다. 게다가 이번 일을 기회로 이창동 감독님과 커피 한잔을 함께할 수도 있었으니 그것도 감안해야 겠고.

한쪽 방에서는 동규가 방금 전 잠든 것을 확인했고, 저쪽 방에서는 윤아가 잠을 못이뤄 엄마 아빠와 씨름하고 있다. 조금 어수선하기는 해도 조금 대가족스러워진 분위기가 별로 나쁘진 않다.

2010년 5월 13일 목요일

Le Grand Meaulnes속의 문장들 - 2

Mais lorsque l'heure fut venue de partir et que je me levai pour faire signe au grand Meaulnes, il ne m'aperçut pas d'abord. Adossé à la porte et la tête penchée, il semblait profondément absorbé par ce qui venait d'être dit. En le voyant ainsi, perdu dans ses réflexions, regardant, comme à travers des lieus de brouillard, ces gens paisibles qui travaillaient, je pensai soudain à cette image de Robinson Crusoé, où l'on voit l'adolescent anglais, avant son grand départ, "fréquentant la boutique d'un vannier"...

Et j'y ai souvent repensé depuis.
프랑수아가 조부모들을 맞으러 마차를 타고 역으로 가기 전 날, 대장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음날 역으로 간다는 핑계를 대고 마차와 말을 구해 학교를 벗어날 생각에 잠겨 있는 Meaulnes. 그리고 그 모습에서 젊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습을 연상하는 프랑수아.


M. Seurel était descendu du petit bureau à deux marches où il était en train de nous faire la dictée, et Meaulnes marchait vers lui d'un air agressif. Je me rappelle combien je le trouvai beau, à cet instant, le grand compagnon, malgré son air épuisé et ses yeux rougis par les nuits passées au dehors, sans doute.
종적을 감췄던 Meaulnes이 며칠 만에 다시 학교에 나타난다. 그의 초췌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을 지대한 선망으로 바라보는 프랑수아.


Mais lorsqu'il se redressa et se retourna vers moi, je vis qu'il portait, au lieu du petit gilet à boutons de cuivre, qui était d'uniforme sous le paletot, un étrange gilet de soie, très ouvert, que fermait dans le bas un rang serré de petits boutons de nacre.

C'était un vêtement d'une fantaisie charmante, comme devaient en porter les jeunes gens qui dansaient avec nos grand'mères, dans les bals de mil huit cent trente.
Meaulnes의 모험의 현실적 증거. 비단 조끼. 옛날 사람들이 무도회에서 춤출 때 입었을 것 같은.


A deux ou trois reprises, durant le mois de janvier et la première quinzaine de février, je fus ainsi tiré de mon sommeil. Le grand Meaulnes était là, dressé, tout équipé, sa pèlerine sur le dos, prêt à partir, et chaque fois, au bord de ce pays mystérieux où une fois djà il s'était évadé, il s'arrêtait, hésitait. Au moment de lever le loquet de la porte de l'escalier et de filer par la porte de la cuisine qu'il eût facilement ouverte sans que personne l'entendit, il reculait une fois encore... Puis, durant les longues heures du milieu de la nuit, fiévreusement, il arpentait, en réfléchissant, les greniers abandonnés.
모험에서 돌아온 후, 다시 그곳을 찾아서 떠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서는 결국 주저하며 떠나지 못하기를 반복하는 Meaulnes.

2010년 5월 8일 토요일

낮잠

이런 저런 일들로 하드디스크 속의 옛날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찾아낸 사진. 너무 귀엽고 평화로와 보여서 자꾸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산책하다가 어딘가에서 발견한 모습일텐데 장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4년 5월, Nantes에서

2010년 5월 5일 수요일

Le Grand Meaulnes속의 문장들 - 1

책을 읽어가며 뽑은 문장들. 따라서 인용구의 순서는 책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순서와 동일. 밑줄, 색 등 텍스트 중 일부를 구별하기 위한 표시들은 원문에는 나오지 않는 것임. 텍스트는 guternberg.org에서 다운받은 파일(형식은 epub)을 기초로 함.


Il arriva chez nous un dimanche de novembre 189...

Je continue à dire "chez nous", bien que la maison ne nous appartienne plus. Nous avons quitté le pays depuis bientôt quinze ans et nous n'y reviendrons certainement jamais.
책의 첫 문장. Augustin Meaulnes이 주인공이 사는 집/학교에 온 해가 189x년임을 밝히고 있다.


Mais quelqu'un est venu qui m'a enlevé à tous ces plaisirs d'enfant paisible. Quelqu'un a soufflé la bougie qui éclairait pour moi le doux visage maternel penché sur le repas du soir. Quelqu'un a éteint la lampe autour de laquelle nous étions une famille heureuse, à la nuit, lorsque mon père avait accroché les volets de bois aux portes vitrées. Et celui-là, ce fut Augustin Meaulnes, que les autres élèves appelèrent bientôt le grand Meaulnes.
주인공(François Seurel)에게 있어 Meaulnes과의 만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술하고 있다. 이 만남을 통해 프랑수아는 유년기를 넘어서게 된다. Meaulnes의 성, 이름 그리고 학생들이 그를 부르는 grand Meaulnes이라는 호칭이 모두 나와 있다는 점이 중요.


Personne ne disait rien. Le maréchal et son ouvrier, l'un soufflant la forge, l'autre battant le fer, jetaient sur le mur de grandes ombres brusques... Je me rappelle ce soir-là comme un des grands soirs de mon adolescence. C'était en moi un mélange de plaisir et d'anxiété: je craignais que mon compagnon ne m'enlevât cette pauvre joie d'aller à La Gare en voiture; et pourtant j'attendais de lui, sans oser me l'avouer, quelque entreprise extraordinaire qui vînt tout bouleverser.
Meaulnes가 그 '모험'을 떠나기 전날 프랑수아가 자신의 느낌을 서술하고 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그를 방문하는 조부모들을 맞으러 역까지 마차를 타고 가는 작은 즐거움, 또한 무엇인지 모를 막연한 어떤 모험에 대한 두가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거의 현실과 몽상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할까. 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이 모험을 떠나기 보다는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가능성속에 머무르고자 하기 때문이다. 대신 가끔씩 꿈을 꾼다. 또한, 옆에 있는 누군가가 불가능해 보이는 그 무언가를 해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