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2019)

여름 방학, 옥주는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 머문다. 남편과의 불화를 겪는 고모까지 합세하여 다섯 식구가 함께 여름을 보낸다. 


여름밤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설렘의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어디서든 얼마 동안이든 헤매다녀도 끄떡없을 포근한 날씨, 후덥지근함 속에 가끔씩 바람에 실려오던 서늘함, 마음에 담아둔 누군가를 생각하며 막막하기도 설레기도 했던 기억들, 집을 떠나 시골에서 바닷가에서 느꼈던 낯선 마음...


할아버지의 오래된 집에 들어오는 순간의 옥주가 품었을 마음은 어땠을까? 예상과 달리 그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무뚝뚝한 할아버지 곁에서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나중에야 생각이 미쳤다. 아직 몸도 마음도 다 자라지 않은 이 아이의 마음 속엔 대체 어떤 폭풍이 지나고 있었을까 하고. 좋아하는 남자 아이와의 관계, 엄마의 부재, 갑작스런 이사, 할아버지를 둘러싼 어른들의 - 이해하기 힘든 - 생각... 뒤늦게 울음을 터뜨리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끔씩 잘 울어야 잘 클 수 있잖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옥주네 세 식구가 떠나온 동네를 - 수색 어딘가인 것으로 보이는 - 묵묵히 보여주는 초반 시퀀스가, 그 속에 보이는 비어있는 집들의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들이 정착한 오래된 양옥집의 - 인천 어딘가인 것으로 보이는 - 모습이 또 다른 이유로 마음에 와 닿았다. 할아버지의 집은 그 자체가 여섯 번째 배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역할을 담당한다. 누군가가 오랜 세월 살아가며 만들어 놓은 풍경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숙연한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남매 역할을 맡은 어린 두 배우를 지켜보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그리고,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며 드라마와 드라마틱함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볼 수 있겠구나 싶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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