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07의 게시물 표시

태양의 노래 - 2006

소녀의 방에는 크게 창이 나 있다. 이른 아침 해가 뜰 무렵 이 창을 통해 그녀는 바깥의 세계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할 무렵 그녀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밤이 되면 통기타를 들고 역 앞으로 나간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해가 뜨기 전, 그녀는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얼마 동안, 왜 어린 소녀가 이런 특이한 생활 리듬을 갖게 되었는지 아무런 단서가 없음에도 그 때문에 답답할 일은 없다. 그저, 그녀가 창을 통해 바라보는 작은 세계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꽤 많은 집들, 철도, 버스 정류장, 몇 안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심심하지도 삭막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 세계는 생각보다 다채로와서, 사람들이 분주한 시장통도 있고, 낮이면 햇살이 눈부신 파도치는 해변도 있고 그 속에서 서핑에 몰두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게다가 소녀가 한 소년을 만난 후 발견한 활기찬 밤의 다운타운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만 그녀가 갖지 못한 것은 또래의 소년 소녀들과 함께하는 학창 생활, 더 크게는 그들 혹은 또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세상 - 그 한 부분 - 을 바라보고 싶은 욕망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울 수 있도록 높은 곳, 그 2층에 마련된 그녀의 방은 마치 전망대 같기도 하고 수족관 같기도 하다. 때로는 창에서 바깥을 바라보다가 그럴 마음이 없어지거나 피곤해지면 다락속같은 잠자리에 숨을 수도 있고, 계단을 통해 거실을 오르내릴 수도 있다. 대문은 무섭게도 햇빛을 정면으로 받게 되어 있긴 하지만 그 속으로 시간 맞춰 피신할 때의 안도감은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클런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다정한 부모님들이 있고, 틈나면 찾아와 마치 캠핑이라도 하듯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단짝 친구도 있다. 친구는 그녀가 탐험하기 힘든 세상을 비록 일부분이지만 대신 탐험하고는 그녀 앞에 내어놓는다, 잘 볼 수 있도록. 물론 그녀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금새 가까와진다. 두 젊은이의 마음이 설...

중고책에 얽힌 부끄러운 모험

같은 건물에 사는 한 남자가 이사를 간다며 수많은 책들을 건물 입구에 진열해 놓았다. 혹시나 들여다 보았더니 흥미로운 책들이 꽤 있었다. 게다가 그 범주도 꽤 넓었는데, 영화, 연극, 역사 소설, 러시아 문학, 명상, 기타 실용서, 비디오 테잎들까지... 얼씨구나 싶어 고르고 골라 열 권 좀 덜되게 집에 가져다 놓고 뿌듯해 했었는데. 저주는 얼마 후에 일어났다.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광고를 봤는데, St Michel가에 있는 B 모 서점 광고였다. 중고책, 씨디 등을 사고 판다는 곳. 그리고 말았으면 좋았는데, 갑자기 건물 입구의 그 수많은 책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 뿐이었으면 좋았을 걸, 옆집 사는 우리 집주인이 또 여행을 떠났고 게다가 집 열쇠까지 맡겨놓고 갔다는 것. 그리고 전에 그 집에서 쇼핑용 카트를 발견했던 것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순식같에 급류에 휩쓸린 듯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어찌 저항할 수도 없었다. 옆집 P 씨의 쇼핑 카트를 빌려, 헌 책들을 한껏 골라 담아 신나게 '그곳'을 향해 떠났다. 가게를 들어서서 점원에게 자랑스레 내가 온 목적을 말하고 카운터 위에 책을 쌓아 올렸다. 그가 순식간에 책을 세보더니 말한 금액은 놀랍게도 2유로 30상팀!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그냥 무기력하게, 계산이 어떤 식으로 되느냐 물었는데 대충 권당 5상팀 - 약 60원 정도 - 정도 된다던가 하는 대답을 대충 흘려 들었을 뿐... 어이없었지만 그냥 그에게 다 넘겨버리고 말았다. 나 자신의 탐욕을 벌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괜히 나 멋지자고 하는 소리 같고, 사실은 거의 기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러마고 대답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많은 후회를 했다. 이웃들에게 부끄럽기도 했고. 평생 섣불리 헌책을 팔아보겠다는 생각 같은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