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0210105

깜박 잠이 들었다가 12시를 조금 넘겨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이 막 떠올랐다.


퇴근길, 이어폰 끼고 운전하는 중에 H군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번에 했던 얘기들을 많이 반복했다. 그가 느끼는 절박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옆자리에서 열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고모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맞장구 쳐대며 웃음을 떠뜨렸다. 문득 영어 문법책 속 한 문장이 떠올랐다. 대충 ‘어린 여자아이들은 웃음 터지는 걸 참기가 힘들다’는 뜻의 문장이었다. 두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저자가 무심히 집어넣었을 이 문장은 현재까지 형성된 내 고정관념에 얼마만큼 기여를 했을까?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 중에 이 문장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페북에서 N군 일상의 한 단면을 엿보았다. 그리고 아파트 계단을 걸어 내려가 담배를 피워 무는데, 아주 간간이 하늘에서 눈송이가 떨어지고 땅에는 마치 다 비운 설탕통 바닥 마냥 흰 가루가 조금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일상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어서, 시도때도 없이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묻던 국어 수업이 실은 굉장히 훌륭한 것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참으로 의미 있는 질문이었는데, 객관식 문제의 정답으로 모두를 이끌겠다는 선하지만 어리석은 의지 때문에 – 이럴땐 SF 소설 속 이상주의자들이 건설한 미래 사회가 늘 삐걱대는 모습을 상상한다 - ‘틀렸다’를 남발하는 교사에 대한 분노의 영향으로 진정한 배움의 경지에 닿기는 영 힘들었다. 어쩌면 이 때문에 삐딱하게 바라보는 습관이 생겨났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 스물에 한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던 더 뼛속까지 ‘선한’ 사람들을 통해 – 그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 삐딱을 넘어 모든 것을 ‘다르게’ 봐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났던 것 같다. 핑계일지도…


그리고 뜬금없게도,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많은 빚을 졌으며 갚아야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일찍이 K군이 자신의 논문 앞자락에 집어 넣은 몇 문장은, 이런 내 마음을 아주 순수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의도는 전혀 다를 지도 모르겠다. 맨정신이거나 술취한 상태에서 오해와 오독의 위험 따위는 개에게나 줘버리겠다며 찾아낸 ‘글의 주제’는 두서없고 흐리멍덩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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