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 Tenet (2020)
우크라이나 오페라 극장에서 일어난 테러 현장에서 임무 수행 그리고 이어지는 위기 상황에서 자살약을 먹은 주인공.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깨어나고, 그를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였다는 설명과 세계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단지 설명은 손가락을 깍지 끼는 제스처와 '테넷 TENET'이라는 단어뿐. 단서를 따라가던 주인공은 사토르 SATOR 라는 인물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가 미래에서 전해온 인버전 Inversion 기술을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닐 Neil 이라는 요원과 팀을 이루고, 사토르의 아내인 캣 Kat 에게 접근한다...
인버전이란 아이디어가 퍽 신선했는데, 단지 시간 여행을 넘어 시간의 역행과 순행이라는 독특한 묘사를 가능케 하는 탓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순행자와 역행자 간의 상호 작용이 영화 속에서처럼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 시간의 한 순간이 아닌 연속적인 일정 시간 동안 두 주체 간의 격투 또는 추격과 같은 행위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야기의 복잡함에 비해 인물들의 심리는 상당히 소홀하게 다뤄지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다만 그럼으로써 주인공은 말 그대로 그냥 '주인공'이 되고,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어떤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 영화는, 과거의 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마저 가능해졌으나 정작 이를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함 앞에서, 인간에게 남은 몫은 무엇일까 고민하기를 청하는 우화가 된다. 이야기 자체로 가슴 서늘한 우화라면, 주인공의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나서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 아닌지 따위는 굳이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주 좋은 우화라고 선뜻 결론 내리지는 못하겠다. 복잡한 플롯과 수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 동안 파악하기에 급급한 탓인지 - 나이를 먹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 비어있는 듯해도 그 빈자리를 상상력으로 채워나갈 만큼 그 인물을 사랑하기에 이르지 못했던 탓인지, 그들의 고뇌와 결단을 끝내 숭고하다고 느낄 수는 없었다.
대신 더 작고 더 개인적인 어떤 영화 또는 세계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그 주인공은 어떤 도구나 기술도 이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세계에서 중요한 분기가 일어나는 - 그렇다고 생각하는 - 몇몇 순간들을 끊임없이 곱씹는다. 만약 그 순간에 적절한 말과 행동을 취했다면 지금 겪고 있는 일을 피할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잠시 후엔 다시 회의에 빠진다. 한 순간 무사히 넘긴다 해도 그와 비슷한 상황은 다시 일어날 것이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전과 같이 행동함으로써 똑같은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를 바로잡는 일의 무의미함을 자신에게 설득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에게 남은 가능성이 무엇이 있을까 따져본다. 멋진 볼거리와 거대한 음모 따위를 제하고 난 적잖은 시간여행물들은 결국 이런 개인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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