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ant la prison
한국에선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인데, 이곳 프랑스에 온 이후로 벌써 세 번이나 시립 도서관에 가입을 했다. 처음 Nantes에서, 그리고 Paris, 가장 최근에 Montreuil에서. 도시마다 그리고 한 도시 내에서도 사는 곳에 따라 열심히 출입하는 곳이 달라지는데(당연한 소리!), 집 근처에 마침 맘에 드는 도서관이 있으면 무척 뿌듯한 기분이 든다. 동네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보는 것들이라면 만화, 잡지책, 음악 CD등이다. 일본만화책이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이 꽤 인상적이고, 종종 천계영의 오디션 같은 한국 작품들을 발견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Avant la prison - Kazuichi Hanawa 작.

중세의 일본, 총을 만드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여자 아이, 부잣집 딸로 태어났으나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소녀. 그리고 현대의 일본, 완전히 녹슬어 버린 권총을 원래의 상태로 만들겠다고 닦고 고치는 일에 여념없는 한 남자. 직접적인 연관 없이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않으나 두 시대의 두 남자들은 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의 한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총을 만들어 판다. 아내는 떠나고 어린 딸과 아주 소박한 삶을 꾸려가는데, 스스로 설명하지는 않으나 그가 겪은 삶의 어려움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현대의 총을 고치는 남자는,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릴적부터 가져왔던 총기에 대한 열정을 위해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의 지저분한 집, 먹는 음식 들로 미루어 그 역시 사치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서로 너무 다른 두 시대, 각 시대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사람은 총을 다룬다는 공통점 외에 다른 많은 점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중세 시대의 이야기는 주로 꼬마 여자아이의 눈을 통해 진행되나, 정작 이야기의 중심 인물은 부잣집 따님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데, 이야기의 끝무렵에 가서야 그 원인을 깨닫게 되고 이를 극복하게 된다. 고통받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나 실패하여 좌절하고, 결국 그 원인이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비로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는 것. 현대의 화자는 총을 다루며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된다. 형편없이 망가진 총을 보며 과연 이를 고쳐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가 하면, 무작정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가 다른 해결책을 발견해 내어 기뻐하고, 결코 완벽한 상태로 총을 복원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라서는 차선의 해결에 만족해 하며...
결국 이야기의 소재라는 것이 아주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갈래의 이야기가 서로 병렬적으로 진행하며 서로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으면서도 공통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설정이 무척 흥미롭다. 게다가 현대의 화자를 어느 정도까지 작품의 작자와 동일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곁가지같지만, 중세시대 꼬마의 아버지 캐릭터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딸아이를 직접 야단치는 대신 조용히 고개를 푹 숙여 그림자가 드린 얼굴, 그러면 즉각 잘못했다고 사죄하는 아이. 비슷한 상황이 여러번 반복되는데 단 한번, 사죄하는 아이에게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이라고 되묻는 장면에서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또한 투박한 그림체,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강렬함, 그리고 중간중간 일본 불교 사상과 현대 감옥에서의 시적 묘사 등이 흥미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Avant la prison - Kazuichi Hanawa 작.

중세의 일본, 총을 만드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여자 아이, 부잣집 딸로 태어났으나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소녀. 그리고 현대의 일본, 완전히 녹슬어 버린 권총을 원래의 상태로 만들겠다고 닦고 고치는 일에 여념없는 한 남자. 직접적인 연관 없이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않으나 두 시대의 두 남자들은 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의 한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총을 만들어 판다. 아내는 떠나고 어린 딸과 아주 소박한 삶을 꾸려가는데, 스스로 설명하지는 않으나 그가 겪은 삶의 어려움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현대의 총을 고치는 남자는,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릴적부터 가져왔던 총기에 대한 열정을 위해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의 지저분한 집, 먹는 음식 들로 미루어 그 역시 사치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서로 너무 다른 두 시대, 각 시대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사람은 총을 다룬다는 공통점 외에 다른 많은 점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중세 시대의 이야기는 주로 꼬마 여자아이의 눈을 통해 진행되나, 정작 이야기의 중심 인물은 부잣집 따님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데, 이야기의 끝무렵에 가서야 그 원인을 깨닫게 되고 이를 극복하게 된다. 고통받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나 실패하여 좌절하고, 결국 그 원인이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비로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는 것. 현대의 화자는 총을 다루며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된다. 형편없이 망가진 총을 보며 과연 이를 고쳐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가 하면, 무작정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가 다른 해결책을 발견해 내어 기뻐하고, 결코 완벽한 상태로 총을 복원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라서는 차선의 해결에 만족해 하며...
결국 이야기의 소재라는 것이 아주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갈래의 이야기가 서로 병렬적으로 진행하며 서로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으면서도 공통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설정이 무척 흥미롭다. 게다가 현대의 화자를 어느 정도까지 작품의 작자와 동일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곁가지같지만, 중세시대 꼬마의 아버지 캐릭터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딸아이를 직접 야단치는 대신 조용히 고개를 푹 숙여 그림자가 드린 얼굴, 그러면 즉각 잘못했다고 사죄하는 아이. 비슷한 상황이 여러번 반복되는데 단 한번, 사죄하는 아이에게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이라고 되묻는 장면에서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또한 투박한 그림체,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강렬함, 그리고 중간중간 일본 불교 사상과 현대 감옥에서의 시적 묘사 등이 흥미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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