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기다리며 (옛날 사진)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이 각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뭔가 그림이 될만한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그 속에서 지냈을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 그 기억들이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지언정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긴 그 투박한 건물들은,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와도 무척 닮아 있었다.

십년이 아니라 단 일년 동안에도 우리는 피할 길 없이 좋고 나쁜 순간들을 겪는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기억으로 남겨지지만, 좀 더 물질적인 흔적도 남을 수 밖에. 내가 늘 지나는 장소 어딘가에는, 아주 희미하게 내 손가락 끝에서 묻어난 얼룩이, 지루한 기다림 중에 남몰래 내가 뱉어놓은 침속의 세포 일부가 화석처럼 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전하려 서두르던 발걸음 탓에 평소보다 크게 울리던 발자욱 소리, 언제든 눈만 감으면 쉽사리 떠오를 것 같지만 떠올리려 하면 번번히 흩어져 버리는 그 장소 고유의 냄새, 오래된 페인트칠의 빛깔.

활발한 사회 생활로부터 은퇴하는 경우 급격히 늙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떠나간 아파트 역시 너무나 쉽게 변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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