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사건

지난주 일요일 정오경, nation 역에서 montreuil쪽으로 가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이든 한 여자 노숙자가 번개같이 내 핸드폰을 뺏어들고는 열차 트랙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뭐라고 막 욕을 해대기 시작하는데… 너무 황당해 왜 그랬느냐고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는 무수한 단어들을 지껄여댈 뿐이다. 잠시 후, 가방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까지 꺼내서는 내 얼굴을 찍으려 했는데, 한손으로 이를 방해하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더라.

조금 시간이 더 지나고 그 여자는 열차를 타고 떠나버리고, 황당한 나와 주변의 몇명의 행인들이 남겨졌다. 그 중 친절한 한 커플의 도움을 좀 받아 역무원을 부르고 상황을 설명하고 나니 좀 진정이 되었다. 역무원이 가져온 쓰레기 줍개로는 길이가 모자라 15분 여를 더 기다려 또 한 역무원과 함께 선로의 전기를 차단하고 그가 직접 선로에 내려가 3개의 조각으로 분리된 핸드폰을 건넸다. 다행히 조립하고 전원을 넣어보니 제대로 작동하기에 한숨을 돌렸고.

미친(듯 보이는) 여자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할텐데 아마 내가 뭔가 나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는가 보다. 세계 각지에서 온갖 종류의 테러, 총기사고 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한 공격의 위험이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폭력을 가하는 자가 (뒤늦게라도) 이해가능한 패턴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때로 이해불가능한 동기에 의해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경험하고 보니 더욱 섬뜩한 느낌이 든다. 핸드폰이 아니라 누군가가 열차가 들어오는 선로에 던져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니 말이다.

오만가지 이유로 사소한 혹은 치명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눠가지는 순간, 이에 저항할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하고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소위 ‘보통’ 사람들은 차차로 더 지옥이 가까와지고 있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빠져들 것이다. 며칠전 뒤늦게 데이빗 핀처의 ‘zodiac’을 보았는데, 일련의 살인사건들의 끔찍함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바람직하지 않은 각성의 순간에 다소 더디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착잡해진다. 왜냐면, 어느 정도의 가속도가 붙는 순간 우리가 아는 세상과 퍽 다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 같다는 염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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