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
프랑스 정부는 우리에게 해마다 최소한 한번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체류증 갱신이라는 명목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이 중대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서류철을 뒤지고 복사를 하고 그걸 또 정리하는 귀찮은 일을 해댔는데, 그 도중에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던 이름이 생각났다. 카프카. 많은 사람들이 ‘변신’이라는 짧은 작품을 쉽사릴 떠올릴텐데, 나로선 먼저 장편 ‘성’이 떠오른다. 이상적인 케이스 – 접수, 서류제출, 발급을 제때에 문제없이 해내는 것 – 로 갱신을 마친다 하더라도 수없이 무의미, 무기력, 우울 따위에 시달리는 것이 당연한데, 게다가 한단계에서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그는 바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한 외국인 – 합법적으로 합당한 목표를 위해 체류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 의 입장에서 볼 때 절차의 번거로움과 담당자들의 까다로움은 소설의 주인공 – K였던가 아니면 진짜 이름이었던가 ? – 이 겪는 것과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악한 음모가 있건 없건 간에 당연해 보이는 어떤 목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인지도 모른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사실을 거부하고 한 개인 혹은 집단의 이기적인 성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확신하게 된다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을 상처입히게 될 것이고, 고로 이제 그가 다른 곳으로 떠냐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쨌건, 올해는 – 역시나 크고작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 다소 편안하게 지나가는가 싶었는데, 서류를 접수하는 여자가 돌연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제출했던 사진과 이번 제출한 것이 동일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그때 컴퓨터를 뒤져, 스스로 촬영한 후보작들 – 겨우 딸랑 둘, 그것도 한날 한시에 찍은 – 중에서 하나를 골라 여럿 출력해 두고 적당히 돌려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나, 그 크기에 그런 일률적인 표정과 포즈로 찍은 내 모습이란 것이 지난 수년간부터 향후 수년간은 별반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래왔던 것이 내 공식적인 이유였으므로 차분히 이의를 제기했다. 대충, malgré que je refais les photos, ça risque d’être identique éventuellement,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니 photo d’identité가 해마다 identique할 수 있는가 없는가, 혹은 반드시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거의 철학의 수준에 이른다.
그러고보면, 해마다 똑같은 양식의 서류들을 똑같은 내용으로 채우고, 간혹 같은 내용에 지난해 일어났던 일 – 1학년에서 2학년으로,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급 따위 – 한줄을 더해간다는 사실도 역시 숙고의 여지가 있다. 가령 운나쁜 한 사내가 10년동안 열심히 공부만 하고 산다면, 그 첫해의 일은 약 9번, 둘째 해의 일은 8번, 결국 역삼각형 모양의 자기독백을 10년간에 걸쳐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지루한 반복을 인간적 행정적 공학 측면에서 검토해 본다면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보르헤스의 단편집을 다시 펼쳐보고 싶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중대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서류철을 뒤지고 복사를 하고 그걸 또 정리하는 귀찮은 일을 해댔는데, 그 도중에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던 이름이 생각났다. 카프카. 많은 사람들이 ‘변신’이라는 짧은 작품을 쉽사릴 떠올릴텐데, 나로선 먼저 장편 ‘성’이 떠오른다. 이상적인 케이스 – 접수, 서류제출, 발급을 제때에 문제없이 해내는 것 – 로 갱신을 마친다 하더라도 수없이 무의미, 무기력, 우울 따위에 시달리는 것이 당연한데, 게다가 한단계에서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그는 바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한 외국인 – 합법적으로 합당한 목표를 위해 체류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 의 입장에서 볼 때 절차의 번거로움과 담당자들의 까다로움은 소설의 주인공 – K였던가 아니면 진짜 이름이었던가 ? – 이 겪는 것과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악한 음모가 있건 없건 간에 당연해 보이는 어떤 목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인지도 모른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사실을 거부하고 한 개인 혹은 집단의 이기적인 성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확신하게 된다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을 상처입히게 될 것이고, 고로 이제 그가 다른 곳으로 떠냐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쨌건, 올해는 – 역시나 크고작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 다소 편안하게 지나가는가 싶었는데, 서류를 접수하는 여자가 돌연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제출했던 사진과 이번 제출한 것이 동일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그때 컴퓨터를 뒤져, 스스로 촬영한 후보작들 – 겨우 딸랑 둘, 그것도 한날 한시에 찍은 – 중에서 하나를 골라 여럿 출력해 두고 적당히 돌려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나, 그 크기에 그런 일률적인 표정과 포즈로 찍은 내 모습이란 것이 지난 수년간부터 향후 수년간은 별반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래왔던 것이 내 공식적인 이유였으므로 차분히 이의를 제기했다. 대충, malgré que je refais les photos, ça risque d’être identique éventuellement,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니 photo d’identité가 해마다 identique할 수 있는가 없는가, 혹은 반드시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거의 철학의 수준에 이른다.
그러고보면, 해마다 똑같은 양식의 서류들을 똑같은 내용으로 채우고, 간혹 같은 내용에 지난해 일어났던 일 – 1학년에서 2학년으로,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급 따위 – 한줄을 더해간다는 사실도 역시 숙고의 여지가 있다. 가령 운나쁜 한 사내가 10년동안 열심히 공부만 하고 산다면, 그 첫해의 일은 약 9번, 둘째 해의 일은 8번, 결국 역삼각형 모양의 자기독백을 10년간에 걸쳐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지루한 반복을 인간적 행정적 공학 측면에서 검토해 본다면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보르헤스의 단편집을 다시 펼쳐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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