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땅의 소녀와 - 2007

La petite fille de la terre noire

강원도의 어느 탄광촌. 영림과 나이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그녀의 오빠 동구, 그리고 광부인 아버지 해곤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진폐증 판정을 받지만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직장을 잃는다. 게다가 그들의 집까지 철거 대상으로 지정된다. 생계를 위해 생선 행상에 나서지만 사고로 이까지 무산되고 술에 빠져 더이상 가족을 돌보지 못하게 되는 아버지. 결국 영림은 오빠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

이 모든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림의 하는 양을 바라보자니 어울리는 듯 그렇지 않은 듯한 어떤 즐거움이 느껴진다. 티비를 보다가 노래와 춤을 따라하고, 애꿎은 닭을 빗자루로 두들기고, 겨우 라면 세개와 소주 한병을 훔쳐 도망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오빠의 바지를 갈아입히는 아홉살 소녀. 철거 통지문을 더듬더듬 읽어갈 때, 그녀가 그 낯설은 단어들을 이해하기 힘들듯 왜 때로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덜 걱정스러운 상황인 것인지, 입원과 새 아파트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따위를 영화 말미즈음엔 그녀가 결국 이해하게 되었을까 아닐까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지하 탄광속 마치 다큐멘터리같은 카메라의 시선. 반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되 결국 당사자에겐 끔찍한 선고가 되고 마는 이야기들을, 영화속 상담자나 의사가 아니라 마치 관객이 선고자인 것처럼 카메라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이를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인 화면속 인물. 아름다운 것도 아니지만 추한 것도 아닌 그저 그 자리에 놓여있는 듯한 어느 탄광촌의 풍경들. 갱도속처럼 검은 빛으로 둘러쌓여 있으나 마치 외부 세계와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오누이가 함께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공간. 이 땅에 속한, 이 땅의 것으로 그린 것이라 말하는 듯한 눈위의 꽃과 이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

소리내어 울지 않는 멜로, 굳이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는 사회 드라마, 결국 어디로도 도피하지 않는 환타지. 이렇게 어느 ‘경계’에 서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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