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8대학의 주요 상영목록(?)
얼마전부터 프랑스 관광청 블로그에 글을 좀 올리고 있다. 마감에 맞추느라 좀 급히 마무리해서 두서없는 글이 되긴 했는데 나름 고생해서 한 일이니 여기에도 옮겨 놓도록 한다. (우영씨, 미리 허락 안받았는데 괜찮겠지요? 혹 문제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파리 8대학의 주요 상영목록(?)
파리 8대학의 주요 상영목록(?)
한 두해 전, 수업 중간 쉬는시간에 파리 8대학 영화과 강의실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영화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보면 재밌지 않겠는가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눈 적이 있다. 대학 영화과 진학 지망생들을 위해 소위 ‘8대학에서 자주 보는 영화들’라는 제목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고, 목록 맨 끝에 ‘이런 영화들을 견뎌낼 자신이 없으면 진학을 포기하시오’라는 경고를 덧붙인다는 장난섞인 계획이었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애초의 의도에서 심술궂은 의도는 대부분 거둬들이고 여기 그 목록을 공개한다. 필자가 수강한 과목들을 기초로 해서 작성했으나, 일부 과목들은 그 이후 폐지되었을 수도 있다.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노스페라투(1922)
영화의 역사에서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는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종종 계획되는 표현주의 영화 수업에서 이 영화들이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들에 대한 수업, 영화의 보존 및 복원에 관한 수업에서도 종종 다뤄진다. 대학에서의 공부 방법, 논문 작성 등의 기초 지식을 위한 강의가 해마다 한번씩 있었는데, 한 영화의 여러가지 버전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 역시 이 영화들이 언급되었던 기억이 난다. 관련 강의를 다 들었으므로 이제 끝이겠지 생각하면 오산. 8대학의 영화 연출 석사 과정에서는 자신이 연출할 작품에 대해 학생들과 교수 앞에서 끊임없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 작품들의 일부 요소를 참고한 영화를 만들려는 학생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
위의 영화들 외에 메트로폴리스(1927)도 단골로 등장하는 작품 중 하나.
- 히치콕의 영화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현기증’ ‘이창’ ‘싸이코’ 등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즐겁다. 어느 시대 이후로 히치콕은 ‘미장센’이라는 용어와 거의 동일시되는 인물로 간주되고 있으므로 그의 영화는 거의 모든 수업에서 사용 가능하다. 1,2학년때 주로 편성되는 개론 수업에서는 물론이며, 시나리오, 몽타쥬 수업 등 수없이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자주 보다보면 흥미를 잃을 수 있으므로, 가급적 개인적인 프로젝트의 참고 자료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나을 듯.
- 장 뤽 고다르
히치콕이 미국을 대표한다면 고다르는 프랑스를 대표한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뿐 아니라 동시대의 세계 각국의 혁신적 영화 운동을 다루는 수업의 한 교수님의 의견에 따르면, 그는 당시 영화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경멸’(1963). 브리짓 바르도, 작품에 직접 출연하는 고다르의 모습, 자막이 아니라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영화 크레딧, 관객과의 상호작용성, 비전형적인 편집, 씬과 씬 사이의 불일치, 영화속에 그려지는 감독 - 프리츠 랑이 직접 출연했음 - 과 프로듀서와의 관계,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등등 무궁무진한 강의 재료를 제공한다.
- 코엔 형제의 영화 중 ‘파고’(1996)
사실 그들의 영화가 그리 많이 언급되지는 않는데, 1학년 시나리오 수업 때 한학기 내내 이 작품만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영화 첫부분부터 보기 시작해서 매 강의마다 5분 내지 10분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을 보고 이야기하고 또 보고 이야기하고... 이렇게 한 학기를 보냈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이 말이 많다고 하는데, 영화과 교수들의 경우 때로 한 씬을 놓고 한 두시간을 뚝딱 입으로 떼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문화적 차이인 것인지 전세계 영화 애호가들의 인반적인 특성인지는 아직도 분명하게 결론내리지 못하고 있다.
- 타르코프스키
흔히 영상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타르코프스키. 실제로 그의 에세이를 읽어 보면, 그가 훌륭한 영화 이론가이자 문학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허나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단지 ‘시적’이라는 표현은 별다른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럼 그의 작품이 과연 시적이기만 할 뿐일까? 수업에서 가장 쉽게 마주치는 그의 작품은 ‘스토커’(1979), 특히 인물들이 금지된 장소로 여행하는 장면에서의 소음, 대사, 음악의 미장센의 치밀함이 종종 언급된다. 학부에 배정된 그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는 몇몇 작품들 전체를 감상하고 미장센, 상징성 등 여러 주제에 대해 토의한다.
-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
말도 많은 20년대 영화사의 맥락에 놓아도 좋고, 미래파 운동과의 관계하에 있어서, 러시아 영화사의 중요한 한 대목으로, 예술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에 대해, 심지어 다큐멘터리의 한 기원으로까지 별의 별 화제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무한한 강의의 원천같은 영화. 특히 동시대의 비슷한 특성을 지닌 각국의 영화들 - 도시, 음악성 등을 다루는 - 및 다큐멘터리 - 소위 시네마 디렉트 - 를 강의하는 한 선생님의 수업에서 그의 영화를 때로는 복원된 음악과 함께, 때로는 완전한 정적 속에서 반복하여 본 기억이 난다. 어쩐지 그의 디비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까지 갖게 만든다.
- 백남준
한때 까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 중 하나였으며, 고인에 대한 존경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그의 비디오 작품들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분야에서 그의 선도적인 역할, 존 케이지 등 그가 교류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추억들을 옛날 이야기 듣듣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한국인 중 이렇게 큰 업적을 남긴 예술가가 있었구나 하며 뿌듯해하려는 순간, 폭넓은 활동과 인생 전체를 통해 한 나라의 국민이라기보다는 세계인이라 불러 더 적절할 듯한 그의 삶을 되새기며 해외 여행에 대한 의욕이 더욱 샘솟게 된다.
- 니콜라스 레이, 프리츠 랑
학기에 따라 한번은 레이, 한번은 랑에 대한 강의를 번갈아가며 하시는 한 노교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지는 못하나 그의 강의 방식은 다분히 씨네클럽같은 분위기이다. 매시간 강의할 인물의 특정 시기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있은 후, 그 시기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면 역시 간단한 정리로 끝난다. 같은 작품들을 반복해 보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작가의 영화를 학기 내내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강의의 주제는 해당 작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씨네필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상으로 다소 산만한 리스트가 대충 마련된 듯 한데, 학생에 따라 듣는 수업이 다르기 때문에 과 학생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두는 것이 좋겠다. 또한 강의 시간동안 한 작품 전체, 또는 일부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종종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게 됨에도 불구하고 언급할 근거가 분명히 있다는 것도. 다만 강의에 주어진 시간, 교수라는 한 인간이 연구에 쏟을 수 있는 지적 에너지의 한계, 일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의 쏠림 현상 등이 어떤 이에게는 다소 편향되어 보이는, 다른 이에게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 물론, 한 작품을 반복해서 보며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도 굉장히 멋진 일이긴 하다.
영국출신의 히치콕이 미국영화를 대표하게 되는군...
답글삭제Well written post. Highly recomm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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